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것
2024년 겨울 세일이 한창이던 어느 화요일, 우리 집 님과 나는 쇼핑을 했다. 나는 쇼핑에 별로 취미가 없지만, 님은 쇼핑을 좋아한다. 열심히 벌었으니 재밌게 쓸 일도 있으면 했기에, 세일 마지막 날, 휴가 내고 같이 쇼핑을 가자고 제안했다. 님이 들뜬 얼굴로 운동복 몇 개를…
마음의 부 ( 富 )
종강 이후로 미처 다 끝내지 못 한 학기의 것들을 잘 마무리하여 덮어둔 뒤 나의 삶으로 야금야금 돌아오고 있었다.일주일 중 단 하루도 쉬는 요일 없이 지내온 지난 학기를 거쳐 맞이한 - 월요일, 목요일 - 무려 두 번의 자유 시간이 있는 삶은 꽤나 달콤했다.'방학 때 해야지' 하며 미뤄…
상관 없는 거 아닌가?
한국의 축축한 공기에 젖은 담배 냄새가 나는 인천공항. 한국에 왔다. 2년 만이다.한국의 공기는 맑은 날에도 곧 비가 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뻤다가 슬퍼져버린 젊었던 날의 기억 같다고 할까.. 감성적인 것이 꼭 나이 탓인 것만 같다. 도착하고 며칠 후 우리는 제주에 머물렀다.첫째 …
성장 마인드셋, 그리스 초등학교에서 배운 태도
초등학생 아이가 그리스로 학교를 옮겼다. 처음으로 시간표를 보는데, 낯선 과목이 있었다. 바로 ‘Growth Mindset’이었다. 유명한 베스트셀러 <GRIT> 책에서 보았던 단어. 타고난 재능보다 끈기 있는 태도가 성공의 핵심이라고 말하던 책. ‘성장 마인드셋’이 초등학교…
[프랑스의 소피] 중세로의 시간 여행 – 프로방의 메디발 축제
프랑스의 6월. 봄의 선선한 바람이 아직 머무는 가운데, 여름의 따가운 태양이 성급히 얼굴을 내민다. 이 절묘한 계절의 경계선 위에서 프랑스는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마법 같은 시간을 맞이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순간은, 파리 동쪽의 작은 중세 도시 프로방(Provins) 에서 펼…
순수의 공소시효
"엄마! 이슬이 꽃을 씻겨주나 봐." 말간 얼굴을 바짝 들이민 아이가 종알종알 얘기한다. 호기심은 오직 맑은 영에 깃든다. 우리에게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처럼 순수함에도 공소시효가 있을까. 나는 오직 아이만이 발견할 수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기억의 …
행운도 불운도 아닌 전환점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불안이 높고 자기 영역이 확실했다. 기질 검사를 하면 위험회피는 97%고, 정서적 개방성이 극단으로 낮으며 거리 두기는 높게 나왔다. 한참 유행이었던 MBTI 검사에서는 내향형이 85%였다. 기질이나 성격 검사를 하면 중간인 항목이 별로 없어서인지 검사를 하지 않아도…
이름 탐험
11개월쯤부터였다. 책을 읽어주면 잠자코 듣고만 있던 아기가 그 작은 손가락으로 책장을 휙휙 넘기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오른쪽 검지를 들어 그림을 하나 둘 가리키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채지 못했는데 그 그림이 나타내는 물체에 사람이 붙인 이름을 말해주었더니 다른 그림…
#25 프라하 육아일기 <모든 시작과 마무리에 뜨거운 박수를>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 성장하는 것. 버텨내는 것 모두. 한 때는 대단한 것을 해야만 대단한 줄 알았는데, 이제는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일이라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더더욱. 버티고, 살아가고,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게 아니다. 학부모로 살면서 가장…
사람은 죽어서 무엇을 남기게 될까
학교에서 가져오는 가정통신문을 아직까지는 꼼꼼히 읽는 1학년의 엄마로서, 초등학교 저학년 학예회가 자원자에 한해서 열린다는 글을 보고 아이에게 물었다.“나가고 싶니?”적극적이고 외향적이라 생각했던 아이는 의외로 “절대로 싫어! 절대 아니!”오역이 전혀 섞이지 않은 거절을 했다. …
종 - 강
길고긴 16주차간의 학기가 드디어 끝이 났다 !시원섭섭 할 줄 알았는데 아니? 무진장 시원하다 ~~~ ! 그저 이 악물고 버티고 버티고 한 번씩 몸이 K.O. 당하면그 틈에 정신도 회복하고 그렇게 버텨온 한 학기가 끝났다.우와 진짜 끝이 날 것 같지 않아보였는데 끝이 났다. 역시 시간은…
삶의 생기는 친구로부터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모임이 있다.나까지 포함하여 셋이라 모임이라고 하기에 머쓱하지만아무튼 ! 한 명은 삼교대 간호사, 한 명은 대구 직장인이라학교 다니며 알바하는 나까지 셋이 시간을 맞추기란 참 쉽지 않다. 그래도 커가며 맞이하는 갖은 풍파에 셋이 더욱 똘똘 뭉치겠노라 …
나의 시간이 시작되려나 -
저번 주를 마지막으로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는 주차가 끝이 났다.아직 마지막 과제 혹은 기말 과제가 남아 진짜 종강은 23일이 되어서야 시작되겠지만왕복 2시간이 넘는 등하교가 빠졌다고 삶에 꽤나 숨통이 트인다. 노래 듣는 것도 참 좋아하고 흥 나는 순간으로부터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는데…
수고했어, 오늘도
요즘 들어 심해진 발뒤꿈치 통증과 하루 종일 숨 돌릴 틈 없이 모니터를 노려봤던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 오늘은 운이 없었는지 지하철을 타고 내 앞에 앉은 사람이 나와 같은 역에서 내린다. 단 한 정거장도 앉지 못했다. 쳇. 수도권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일은 대중교통이든 자차든…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리스로 떠난 이유
서울에서 아테네로 이사했다. 남편이 그리스로 발령을 받았다. 그것도 4년이라니. 이건 나의 계획이 아닌데. 아직 나는 한국에서 하고픈 일이 많은데. 앞으로 가족과 친구를 쉽게 볼 수 없다는 생각에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는 사람인데, 굳이 한 번도 가본 …
관찰의 효과
2017년 3월 4일 동아사이언스에 실린 윤병무 시인의 글에 따르면 ‘눈썰미’와 ‘안목’은 관찰력에서 기인하며, 이는 다시 “마음의 작동으로 동작”한다. 어딘가 나의 마음이 끌리는 곳에 관심과 눈길이 가고, 그러한 관찰의 결과가 사물을 묘사하는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사람 …
나의 다짐
글을 쓰는 것이 나의 일이었던 적이 있다. 현장취재를 하고, 인터뷰를 해서 문장으로, 단락으로 정리해 한 편의 원고를 만드는 것은 제법 익숙한 일이었다.그렇게 원고를 모아 한 권의 잡지로 만드는 일. 잉크냄새 폴폴 나는 책을 사무실에서 펼쳐보는 일이 좋았다. 독자가 필요한 일이지만 그와…
Dear. My Sunshine
"잠보 잠보 뿌아나 하바리 가니 은주리 사나 와게니 와카리 비슈아 케냐 예뚜 하쿠나마타타!" 관자놀이에 핏대를 세우며 열창하는 아이를 보며 안도감이 밀려왔다. 케냐 민요가 아니라 외계어면 어떠하리. 네가 신나게 부르면 그만이지. 시도 때도 없이 노래를 불러 젖히는 아이가 귀여워 합창 …
상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고모할머니는 위암 말기로 돌아가셨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는 거의 아무것도 드시지 못한 체 작고 단아한 그 얼굴이 하얗다 못해 둔탁한 빛을 띠기까지 했다. 힘이 없어 말을 할 수도 없었고, 그러잡은 손은 뼈 위에 얇디얇은 가죽을 걸쳐 놓은 듯 앙상했다…
체험판 경제적 자유를 찍먹해보고 깨달은 것
윤중로를 뛰다 맡게 된 ‘자유의 냄새‘‘건강한 몸’이라는 휴직의 첫번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운동을 했습니다. 육아와 병행하는 일상 이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짬을 내어 운동을 하면서 건강해지는 모습에 도파민 분비를 느끼며 행복하게 보내고 있었습니다.평소와 다름없는 어느 늦은 아침…